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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너의 영원한 친구야
개구리와 돌멩이 본문
리더십은 민감해야 한다. 남들이 예상하지 못하는 곳까지 살피고 관심을 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현대사회는 복잡하다. 사람마다 처한 상황이 다르다. 삶의 변수도 많아졌고 환경도 천차만별이다. 이런 복잡한 시대에는 당연히 사람과의 만남도 다양하고 복잡하다.
독일에서 태어난 내 아들은 한국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6살이 되기 전에는 자신은 한국 사람이 아니라 독일 사람이라고 자신 있게 이야기하곤 했다. 한국과 독일이 축구를 하면 언제든지 독일 편을 들어 응원을 하곤 했다. 자신은 독일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당연히 독일 사람이라고 우겼다. 이렇게 독일 사람이라는 것에 대한 긍정적인 생각을 갖게 된 것은 어렸을 때 한국 사람에 대한 좋지 않은 기억 때문이다.
아이는 걷기 시작하면서 한인교회의 유치부에 들어가 다른 아이들과 같이 예배를 드리곤 했다. 내 아들은 다른 아이들에 비해 늦게 성장한 편이라 상대적으로 키가 작았다. 그래서 교회에서 만난 한국 아저씨와 아주머니들은 "민수야 너는 왜 그렇게 키가 작니? 우유를 잘 안마시나 보구나. 빨리 커져야지, 쟤 봐 너보다 훨씬 크잖아"라고 아들에게 이야기하곤 했다.
물론 특별히 나쁜 의도로 한 말이 아니다. 부모인 나 역시 그 말을 특별히 신경쓰지 않았다. 나중에 크는 아이도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이에게는 그것이 큰 상처가 되었나 보다. 게다가 독일인 친구 엄마나 아빠는 볼 때마다 "야, 정말 남자답게 용감하게 생겼구나. 와, 큰 인물이 되겠네, 정말 씩씩하구나" 등 신체적인 문제나 어떤 부정적인 말로 아이에게 상처를 주는 일이 없었다.
이런 것이 알게 모르게 아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자기를 인정해주고 칭찬해주는 쪽을 더 좋아하게 되었고, 자연히 자신이 독일 사람이기를 바랐던 모양이다. 한국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은 한국 사람을 보면 얼굴을 돌리고 도망가는 기피증까지 갖게 만들었다. 나는 나중에야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무심히 던지 한마디 한마디가 결국은 아들의 행동에 영향을 주었던 것이다
우리 아이의 예처럼 우리가 아무 뜻 없이 불쑥 내던진 한마디에 상처받고 의기소침해지는 일이 우리 주변에는 예상 외로 많다. 가정에서도 마찬가지다. 이제부터 이왕이면 아이를 살리는 말을 하도록 하자. "무심히 던진 돌맹이에 개구리가 죽는다"는 말도 있다. 나의 한 마디 한 마디가 아이를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한다는 것이다.
가능한 한 다양한 사람들의 고통과 처지를 이해해줄 수 있는 마음 가짐도 21세기가 필요로 하는 리더십의 덕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