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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갈레리우스 (3)
나는 너의 영원한 친구야
305년 막시미아누스에 이어 서로마 황제가 된 콘스탄티우스 클로루스는 원래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충직한 부하였다. 271년 달마티아 (현 세르비아)에서 소규모 전쟁을 치른 콘스탄티우스는 어느 시골 여관에서 머물게 되었다. 자신의 이름 클로루스의 뜻처럼 얼굴이 "창백했지만" 미남이었던 그는 여관 주인에게 하루 밤을 같이 보낼 여성을 부탁하였다. 23살의 젊은 장군이 맘에 든 여관주인은 놀랍게도 16세 된 자신의 딸 헬레나를 주었다. 이틀 후 콘스탄티우스는 헬레나에게 자신의 옷과 돈을 주고 기약 없이 떠났다. 그 하룻밤이 세계 역사를 바꾸는 시작이 될 줄은 아무도 알지 못했다. 9개월이 지나 헬레나는 콘스탄티우스의 아들을 낳았고 그녀는 아들의 이름을 아버지를 본 따 '콘스탄티누스'라고 지었다. 하지만 헬레..
304년 재임 19년째에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는 건강 악화로 갑자기 쓰러졌고 더 이상 업무를 수행할 수 없었다. 어차피 20년간 통치하고 퇴직하기로 공언했으므로 305년 5월 1일 공식 은퇴를 선언했다. 서로마 황제 막시미아누스도 약속대로 함께 물러나게 했다. 오래 세월을 기다린 서로마 부황제 콘스탄티우스 클로루스와 동 로마 부황제 갈레리우스는 각각 황제로 즉위하였다. 은퇴한 디오클레티아누스는 고향 살로나로 물러가서 밭을 갈며 지냈다. 재임 시절 너무 많은 사람들을 살육한 까닭에 그는 매일 보복의 공포에 시달렸다. 살로나 외곽 해변 가의 황궁은 점차 요새로 변해갔다. 로마 제국 박해의 3세기 동안 기독교도들은 처참한 고난을 당했지만 황제 살해음모를 획책한 적이 없었다. 황제는 기독교도들보다도 정적들의 보..
디오클레티아누스는 자신을 신으로 숭배하도록 포고령을 내렸다. 그는 비단과 금사로 만든 황포를 입고 진주 왕관을 쓰고 보석 신발을 신었다. 태양 아래서 더욱 빛났던 그의 모습은 백성들에게는 신의 대리자처럼 보일만 했다. 황제는 모든 신전에서 자신에게 제사를 할 것을 명했다. 이전에는 황제를 위해 다른 신들에게 기도했으나 이제는 신으로 자처한 황제에게 기도했다. 그러나 기독교도들은 황제 숭배를 전면 거부하였다. 302년 디오클레티아누스는 소아시아 디디마의 아폴로 신전에 "골치 아픈"기독교인들에 대한 신탁을 요청했다. 디디마는 밀레토스(밀레도) 항구 남쪽 인근의 헬라 성소로서 당시 델피에 이어 두 번째로 큰 신전 도시였다. 디디마의 이교 사제들은 동물 제사를 바치고 그 내장을 꺼내 살펴본 후 황제에게 신탁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