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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콘스탄티누스 (3)
나는 너의 영원한 친구야
313년 2월 서로마의 콘스탄티누스 황제와 발칸을 다스리던 리키니우스 황제는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함께 만났다. 이는 제국의 문제를 결정하는 공적 회담이며 동시에 콘스탄티누스의 여동생과 리키니우스가 결혼식을 올리는 사적 행사였다. 회담 결과 유명한 "밀라노 칙령"을 발표하였다. 그 일부는 다음과 같다. "황제 콘스탄티누스와 황제 리키니우스는 밀라노에서 만나 공공의 안녕과 복지에 관한 모든 사랑을 의논하였다. 먼저 우리는 공익을 위해 신을 경배하는 문제를 논의하였고 다음과 같이 결정하였다. 이제 그리스도인들에게 자유롭게 예배할 완전한 권리를 부여한다. 이 포고령은 제국 어디서나 선포되며 모든 이들에게 알려져야 한다."(The Orginal Sources of European history, 1907: Vol..
군사력은 막센티우스의 군대가 보병 170,000명과 기병 18,000명으로 훨씬 강하였고 이에 맞서는 콘스탄티누스의 군대는 보병 90,000명과 기병 10,000명정도였다. 더구나 강력한 친위 부대는 이미 막센티우스를 지지하여 콘스탄티누스는 현저히 불리한 상황이었다. 312년 여름 콘스탄티누스의 군대는 남진하면서 적성 도시들을 하나씩 정복해 나가며 막센티우스 군대에 타격을 주었다. 콘스탄티누스의 편으로 합류하는 도시들도 늘어났다. 그러나 정작 본진 간의 전투는 아직 남겨두고 있었고 여전히 그는 두 배나 열세였다. 312년 10월 로마 북쪽 밀비안 강 근처에서 역사적인 "밀비안 전투"가 벌어졌다. 4세기 역사가 유세비우스는 이 전투를 자세히 기록해 전해주었다. 로마 군인들은 전쟁에서 아폴로 신을 숭배하였고..
305년 막시미아누스에 이어 서로마 황제가 된 콘스탄티우스 클로루스는 원래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충직한 부하였다. 271년 달마티아 (현 세르비아)에서 소규모 전쟁을 치른 콘스탄티우스는 어느 시골 여관에서 머물게 되었다. 자신의 이름 클로루스의 뜻처럼 얼굴이 "창백했지만" 미남이었던 그는 여관 주인에게 하루 밤을 같이 보낼 여성을 부탁하였다. 23살의 젊은 장군이 맘에 든 여관주인은 놀랍게도 16세 된 자신의 딸 헬레나를 주었다. 이틀 후 콘스탄티우스는 헬레나에게 자신의 옷과 돈을 주고 기약 없이 떠났다. 그 하룻밤이 세계 역사를 바꾸는 시작이 될 줄은 아무도 알지 못했다. 9개월이 지나 헬레나는 콘스탄티우스의 아들을 낳았고 그녀는 아들의 이름을 아버지를 본 따 '콘스탄티누스'라고 지었다. 하지만 헬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