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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너의 영원한 친구야

드단, '울라'에서 /2001년 3월 3일 토요일 둘째 날 본문

책을 통해본 세계

드단, '울라'에서 /2001년 3월 3일 토요일 둘째 날

영원한 친구 주님 2014. 4. 22.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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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을 새롭게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렸다.

사우디아라비아 관광 안내 책자를 통해 케이바(Khaybar)라는 동시에 고대 유대인(이스라엘)의 유적이 산재해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케이바로 향하기로 했다.

   케이바 마을 어귀에 오아시스가 있었다.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댐 형태를 갖춘 저수지였다. 하지만 물은 없었다. 그 근처에 검은 돌덩이가 돌무덤처럼 수북이 쌓여 있어서 아이들과 함께 둘러보고 있었다. 그때 어디선가 개 짖는 소리가 들려서 돌아보니 들개 떼가 먼지를 일으키며 우리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우리는 얼른 자동차로 피신했다. 들개 20여 마리가 차근처까지 쫓아와서 침을 질질 흘리며 으르렁거렸다. 더 둘러 보는 것을 포기하고 갈길을 재촉했다.

   앞으로 우리의 갈 길은 멀다. 이제는 더 깊숙이 내륙으로 들어가 미디안 땅으로 갈 계획이다. 성경에는 '미디안'이라고 하지만 여기 사람들은 '메다인'과 ''마다인'에 가까운 발음을 한다. 아직도 수천 년 전 모세가 부르던 그 이름을 거의 그대로 부르고 있는 것이다.

   지도에서 보면, 미디안 땅은 사우디아라비아 북서쪽에 위치하고 있다. 거기는 나바테아인(Nabataeans: 기원전 7-2세기까지 무렵까지 활동한 아바비아의 한 종족, 이스마엘의 장남 느바욧을 일컫는다)의 유적지가 산재해 있는 곳이다. 지금 우리가 있는 곳에서 약 200km 떨어져 있는 곳으로 어림짐작으로 2시간 정도는

걸릴 것 같았다.  광대한 사막길을 달렸다. 제법 돌산들이 드문드문 보이기 시작하더니, 잠시 후 곳곳에 사암으로 형성된  바위산들이 시야에 가득 들어왔다. 풍화작용에 의해 만들어진 산의 모양새가 독특했다.

 

    온통 기기묘묘하고 아름다운 형상을 한 바위산으로 둘러싸여 별천지를 연상하게 했다. 마을 전체가 한 폭의 그림을 그려 놓은 듯 아름다웠다. 지하수가 풍부하고 대추야자와 농작물들이 많이 자라고 있어서 도시 전체가 푸르른 것이 다른 도시와는 사뭇 달랐다. '울라(Al Ulra)'에 도착한 것이다.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우리 모두의 입에서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다행히 날이 어둡기 전에 호텔을 찾을 수 있었다. 꽤 고급 호텔이었다. 호텔 뒤편으로 기묘한 바위들이 병품처럼 감싸고 있는 모양이 마치 동화 속의 어느 별나라를 연상하게 했다. <혹성 탈출>이라는 영화에도 비슷한 장면이 나오지만 이에 비할 바가 못 된다.

   호텔에 들어서자 카운터의 종업원이 반갑게 맞으며 우리나라 대사님이 투숙 중이라고 했다. 깜짝 놀라 방 호수를 물어보고 확인했더니 일본 사람이었다. 그 종업원이 우리를 일본 사람으로 착각한 것이다.

   왕족의 말이 곧 국법이며 신의 뜻인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왕자의 주치의인 나는 교민들 사이에서도 꽤 유명한 인사이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통장.반장노릇 다하면서 겪는 에피소드도 많다.

   하루는 깊은 잠이 빠져 있는데 전화벨 소리가 요란하여 잠에서 깼다. 시간은 새벽4시를 넘어서고 있었다.

   "여보세요"

   잠결에 받아 보니 어느 아낙네의 목소리가 다급하게 들려왔다.

   "김 선생님, 우리 애들 아빠가 경찰에 잡혀갔어요."

   평소에 가까이 지내던 집이고, 일 년 전에 전도를 받아 교회에 열심히 다니는 집이었다. 화들짝 놀라 잠이 깼다. 나는 밤중이든 새벽이든 언제라도 누가 부르면 달려가야 한다. 열 번 도와주다 한 번 무관심하면 언제부터 왕자 끄나풀이 되었냐는 둥, 별소릴 다 듣기 때문이다. 업체는 업체대로, 개인은 개인대로 문제가 발생하면 나부터 찾았다. 급하게 가 보았더니, 아주머니는 눈물 콧물이 뒤범벅이 되어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함께 사업하던 사우디아라비아 사람이 자꾸 돈을 요구했어요. 돈이 없다고 하자 우리 집 창고에 있던 건설 자재를 빼앗을 심산으로 밤늦게 술을 가지고 나타난 거예요. 우리 남편이 평소에 술을 좋아하는 것을 알고서요. 함께 마시고 있을 때 경찰들이 쳐들어왔는데, 그 사람은 도망치고 우리 남편만 잡혀갔어요."

 

   사우디아라비아는 코란 경전에 의해서 술을 가지고 있을 수도 없고 마실 수도 없으며 반입도 금지되어 있다. 듣고 보니 경찰들이 어떻게 그 집에서 술을 마시는지 알게 되었으며, 왜 아녀자들이 있는 집을 주인 허락도 없이 무단으로 침입했는지, 술을 가지고 온 사람은 풀어 주고 한국 사람만 잡아왔는지 모든 것이 이상했다. 그의 계략이 틀림없는 것 같았다. 나는 평소에 알고 지내던 비밀경찰에게 전화를 걸어 소재 파악을 부탁했다. 곧 어느 경찰서 유치장에 있다는 연락이 왔다. 거기로 달려가 담당 경찰에게 물어보았다.

   "이미 병원에서 피를 뽑아 알코올 농도를 확인했습니다. 세 명의 의사가 서명을 했기 때문에 이제는 옴짝달싹도 못할 겁니다. 또 그 사람을 연행하는 과정에서 그 집 아주머니가 경찰의 팔목을 물어뜯어서 전치 2주의 상처가 생겼습니다. 내일 날이 밝으면 그 아주머니도 연행할 겁니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증인 세 명만 있으면 법적인 효력을 발휘할 수 있다.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었다. 나는 생각을 정리하면서 그들에게 먼저 정황을 살펴보고, 앞의 문제에 대해 해명하라고 했다. 경찰의 얼굴이 울그락불그락하더니 내게 따지듯 되물었다.

   "대사관에서 나왔습니까?"

   "그렇지는 않지만 원하면 지금이라도 대사관 직원들을 부르겠습니다." 경찰은 당장 나가지 않으면 나도 집어 넣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네가 집어넣으면 들어가야 하겠지만, 쉽게는 안 될걸! 하고 말하자, 약이 오른 이 친구가 인터폰으로 하급자 한 명을 부르더니 나를 집어넣으라고 명령했다. 상황이 심각해지고 있었다. 이러다 정말 들어가면 나는 교민 사회에서 유명무실한 허수아비가 되고 마는 것이다. 나는 큰소리를 쳤다. "너희들, 내 몸에 손가락 하나라도 대면 너희들이 다 들어간다!"

 

   나는 체류증과 왕자의 서찰(왕자가 비상시에 쓰라고 써 준 특수 서한)을 담당관에게 던지면서 지금 왕자 비서에게 급한 전화를 해야겠다고 말했다. 그때만 해도 휴대폰 가격이 비싸서 아무나 갖지 못할 때였다. 내가 휴대폰을 꺼내 들고 전화 거는 시늉을 하자 다급하게 내 손을 잡으며 말했다.

   "사딕(친구), 사딕! 독토르(닥터), 독토르!"

   그들은 홍차인 샤이를 권하면서 아주머니의 남편은 자기들이 책임지고 출감시킬테니 왕자에게는 절대로 이야기하지 말라고 오히려 부탁했다.

   나는 그들과 함께 유치장으로 가 보았다. 아주머니의 남편은 신발이 벗겨진채로 양쪽 발목에는 쇠사슬이 채워져 있었다. 허리띠를 빼 버려서 흘러내리는 바지를 양손으로 잡은 채로 다른 죄수들 틈에 끼어 있었다. 아직도 술이 덜 깬 모습으로 비실거리면서 나를 보더니 "아니, 이거 창피하게... 김 선생님 어인 일이십니까? 하고 말했다.

   그를 데리고 나오면서 압수당했던 그의 소지품도 되돌려 받았다. 그런데 그의 지갑에서 부적 한 장이 나왔다. 믿음 생활한 지 일 년이 지났는데도 아직까지 부적을 소지하고 있으니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잠시 뒤 먼동이 터왔다. 밤을 하얗게 지새운 것이다. 나는 그를 도심 변두리에 있는 홍해 바닷가로 데려가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명문학교를 우수하게 졸업하고 영어와 아랍어를 능통하게 하는 수재였다. 그는 내가 보는 앞에서 부적을 찢어 홍해 바다에 뿌리며 말했다.

   "김 선생님, 날 용서하시오. 사실 그동안 어머님 말씀을 들으랴, 믿음 생활 하랴 갈등이 많았는데, 이제는 작심했소."

   숙연한 그의 말과 눈빛에서 그동안 얼마나 많은 고충이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눈앞에는 붉은 태양이 힘차게 솟아오르고, 바다 새들은 먹이를 찾아 날고 있었다. 그리고 몇 주 뒤, 그 부부는 딸 둘과 아들까지 다섯 식구 모두가 전교인이 지켜보는 앞에서 세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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