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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너의 영원한 친구야
망명길 위의 교회 본문
지난 수십년간 중국의 기독교 가정들은 정부와 그 어떤 탄압에도 담대하고 기쁘게, 겸손한 마음으로 그리스도께 순종해 왔습니다. 불가피하게 목회자가 체포당해 투옥되더라도, 성도들은 자신이 그 자리를 대신할 수 있도록 준비해왔습니다. 수감된 목회자들은 감옥에서 보내는 시간을 주님이 허락하신 새로운 사역의 기회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들은 감옥 안에서 기쁜 마음과 순종으로 그 사역을 계속 이어나가는 한편 그리스도를 위해서는 어떠한 대가도 감수해왔습니다.
이번 소식지에서는 이렇듯 신실한 중국 성도들의 이야기를 전해 드립니다. 또한 순교자의 소리 웹사이트에서는 핍박이 축복이었다고 실제로 고백하는 '이른비 언약교회의 어느 가족 이야기도 만날 수 있습니다.
한 중국 교회가 잠정적인 교회 폐쇄와 자녀들에게 그리스도를 가르치지 못하게 하는 정부 규제 등의 현실에 직면하면서 고통스러운 결정을 내리게 되었다.
짠용광 목사는 근심하는 70명의 교인들 앞에 엄숙한 마음으로 섰다. 그리고 교인들에게 앞으로 중국에 계속 남아있을 것인가, 아니면 나라를 떠날 것이가라는 고뇌어린 질문을 던졌다. 70명의 교인들은 저마다 나를 떠나게 될 경우의 결과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나이든 부모님, 친척들, 다니던 직장과 살던 집에는 어떤 영향이 미칠것인가? 잠시 시간이 흐른 뒤, 교인들은 양쪽으로 갈라져 열띤 논쟁을 벌이며 토론했다. 최조 투표 결과, 찬성 53표와 반대 17표가 집계되었다. 메이플라워 교회로 잘 알려진 '선전 개혁성결교회'는 그렇게 중국을 떠나왔다. '괴로운 결정이었지요. 판목사가 말했다.
탄압받는 교회
판 목사는 2014년부터 정부로부터 극심한 탄압을 받았다. 당국은 일주일에 두 번씩 그를 소환해 심문했고, 판 목사뿐 아니라 그가 목회하는 미등록 불법 교회를 압박하여 정부가 통제하는 '삼자애국운동'에 가입할 것을 촉구했다. 그러나 판목사는 이를 거부했다. 성경적 가르침을 두고 타협하거나 공산당 정부의 감독에 굴복하기를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2002년 선전 개혁성결교회가 세워졌을 때, 교회에는 홍콩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중국의 기술 중심지인 선전에서 근무하깅 위해 이주해 온 젊은 전문직 종사자들이 대부분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교회에는 어린이들이 늘어났고, 교인들은 자녀들에게 성경적 원리를 가르치고자 했다. 그래서 교회를 세운 지 몇 달 뒤, 이들은 유치원을 열었다. 짠 목사는 이렇게 말했다.
엄밀히 말해 이 유치원은 불법이었다. 중국 법률은 미성년자에게 종교를 가르치는 것을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교회가 간혹 경고장을 받거나 경찰이 몇차례 교과서를 압수해가기는 했지만, 당국이 크게 우려를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닫. 자녀들은 성경으로 양육하기로 결정한 교회 성도들에게 이 정도 산발적 괴롭힘은 당할 가치가 충분한 일이었다.
수년 동안 중국 교회들은 이와 같이 당국의 광범위한 묵인 아래 독립적이고도 불법적인 교회로 존재하며 역활을 감당해왔다. 집에서 모이든 집 아닌 곳에서 모이던 간에, 또 다른 독립적인 교회인 이른바 '가정교회' 역시 그들만의 학교를 세웠다. 청두 시에 있는 이른비언약교회의 왕이 목사는 2013년 교회 부설 학교를 시작하기 전, 판 목사의 운영 방법을 이른비 언약교회에 접목하기 위해 그를 초대하기도 했다.
그 무렵 경찰은 매달 선전 교회를 찾아오기 시작했다. 판 목사가 무엇을 가르치는지 감시하기 위해서였다. 이후 방문은 매주 이루어졌다. 판 목사는 '경찰은 항상 나를 찾았고, 차를 마시러 오라'는 것은 수많은 중국 기독교인이 당하고 있는 비공식적 심문 조사를 완곡하게 표현한 것이다.
계속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