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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너의 영원한 친구야
알렉스 퍼거슨이 이끈 맨유의 20년(1) 본문
퍼거슨은 1990년대 맨유를 세계 최고 클럽 중 하나로 키우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한 사람이다. 퍼거슨은 그 자신을 지금껏 가장 성공한 영국 감독 중 하나로 만들었고, 맨유 역시 그렇게 만들었다. 당시 맨유는 무한한 가능성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26년간 단 한번도 리그 우승을 이끌지 못했다. 퍼거슨은 그런 맨유를 이끌면서 세계 최고의 팀으로 발전시켰다.
경쟁팀들의 경우 수많은 감독들이 오고 갔지만, 퍼거슨의 위치는 정말 확고부동하다. 정직하고, 강인하고, 원동력을 불어넣어주고, 강박 관념에 사로 잡혀 있지만 매력적이며, 유머스러하고, 완고하면서도 공격적인, 이 모든 말들이 그 자신의 정신과 몸을 맨유에 온전히 바친 퍼거슨에게 전적으로 해당되는 단어일 것이다.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우의 고반에서 태어난 알렉산더 채프먼 퍼거슨은 23살 때까지 클라이드 지역 조선소에서 숙련공으로 일했다. 그 기간 동안 그는 퀸즈파크와 세인즈 존스톤에서 파트타임 선수로 뛰기도 했다. 그 뒤 그는 프로 선수의 길을 밟았고, 1964년 던펌린(Dunfirmline)구단에 중앙공격수로 합류했다. 공격수로서 퍼거슨은 몸을 날리는 스타일이었다. 개인기는 부족해도 상대를 위협하는 투지로 감독의 칭찬을 듣곤 했다. 여기서 그는 어린 시절 우상이었던 글래스고우 레인저스 팀으로부터 영입 제의를 받았고, 1967년 6만5천 파운드에 입단하게 된다.
하지만 레인저스 시절은 성공적이지 못했고, 1969년 팔커크(Falkir)에, 1973년엔 에이르(Ayr)로 팀을 옮기게 된다. 1974년 선수 생활을 그만둔 그는 이스트 스털링(East Stirling)에서 감독생활을 시작한 뒤 곧 세인트 미렌(St Mirren)으로 옮겨 1978년까지 3년간 감독직을 영위한다. 세인트 미렌에선 한정된 자원으로 꽤나 팀을 잘 꾸려 갔지만 구단주와의 마찰 때문에 갑작스레 경질됐고, 그의 실력을 주시하고 있던 애버딘으로 옮긴 뒤 그의 전설이 시작됐다.
그는 한정된 자원으로, 평범하기만 한 애버딘을 1980년대 스코틀랜드 축구를 휘어잡는 팀으로 만들었다. 당시 글래스고우 지역의 양대산맥으로 올드 펌(Old Firm)이라는 별명으로 불렀던 거대 구단 레인저스와 셀틱의 전형적인 양강 구도속에서 그의 이름을 새겨 나간 것이다. 애버딘은 1983년 유러피안컵 위너스컵에서 레알마드리드를 상대로 2-1의 짜릿한 승리를 거두면서 절대적인 강자로 떠올랐다. 지금까지 스코틀랜드 팀 중에서 유러피안 트로피를 가져간 팀은 그 이후로 아직까지 존재하지 않는다.
그 일 이후 대형 클럽들이 그에게 접촉을 시도했다. 바르셀로나와 아스날, 레이저스, 토트넘(그는 한때 토트넘 감독을 심각하게 고려하기도 했다) 등 유명 구단이 그를 영입하고 싶어했지만 운명은 그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이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