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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바, 반디미르의 그녀가 온다

영원한 친구 주님 2014. 3. 21.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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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국주가 만난 사람들▶아프간 오지마을 처녀 ‘제바’]

10월에 눈이 내리기 시작해서 4월 말까지 깊은 눈에 잠기는 해발 4000미터 고지 반디미르가 그녀의 고향이다. 그런 그녀가 ‘원더풀 아프가니스탄’ 사진전의 손님으로 한국을 찾는다. 반디미르에서 차를 타고 카불까지 열네 시간, 생애 처음으로 비행기 트랩에 오를 그녀를 기다리는 내 가슴이 두근거린다.

   
제바 발라기(Zeba Balagi)는 아프간 반디미르에 사는 열네 살 처녀다. 그녀에 대해 겉으로 설명하려면 이 것 외에 그저 학생 정도라는 것과 여러 명의 식구들이 엉켜 살아가는 정도 말고는 설명할 것이 없다. 그리고 다른 것 하나가 더 있다면, 문명이라고는 도무지 모르는 아프간 오지마을의 처녀라는 점이다. 그런 그녀가 포스트모더니즘 시대를 넘어서 문명한 세계, 한국으로 첫발을 내딛는다.
그녀가 사는 반디미르는 비록 오지이기는 해도 아프간 유일의 국립공원이다. 우리나라 같으면 국립공원 내에 인가를 없애고 도시를 정비하겠지만 아직 아프간에서 그런 모습은 찾을 길이 없다. 그런 탓에 국립공원 입구에 말뚝을 세워놓고 나무로 만든 차단기를 지나면 제바네 집을 훤히 쳐다보면서 반디미르 국립공원을 입장하게 된다. 그랜드캐니언 같은 모습을 연상시키는 아프간 자연의 백미라 할 산자락에 그녀가 산다.

지난 늦봄, 두 번에 걸쳐 반디미르를 다녀오면서 반디미르에 놀라고 오지마을 처녀 제바의 모습에 두 번 놀라웠다. 사진작가 스티브 맥커리가 25년 전 파키스탄 난민촌에서 만난 아프간 처녀를 찍어 ‘내셔널지오그래픽’을 통해 특종을 올렸다면 나는 제바를 우리 시대의 아프간 아이콘으로 삼아 그녀를 설명하고 싶다.

지난 6.25동란 중 강원도 산골에 사는 오지마을에는 남쪽을 치고 내려오는 인민군이나 압록강을 탈환하기 위해 38선을 오르내리던 국군이 스쳐갔지만 이런 오지마을까지 찾아왔던 것은 아니다. 그런 탓에 전쟁이 끝나고도 전쟁이 있었는지조차 모르고 지낸 마을 사람들이 많지 않았던가?
마찬가지로 우리는 아프간하면 탈레반을 연상한다. 그런 탈레반이 칸다하르를 중심으로 근본주의 이슬람 운동을 펼치다 아프간 정국을 장악하고 폭정으로 나라를 다스렸다. 결국 9.11테러 이후 미군의 작전으로 탈레반이 와해되었고 일부 지역에서는 아직 미군이나 유럽의 연합군이 소탕전을 펼치고 있기는 하지만, 그래서 뉴스마다 아프간 전투를 다루다보니 아프간 전국이 전쟁 중이라는 선입감을 갖기 쉽다. 38개 주 가운데 다이쿤디와 비미얀 주의 주민 98퍼센트는 몽골족의 후예들인 하자라 족이 산다. 탈레반의 주축을 이루는 파슈툰 족의 대부분이 수니파인데 반해 하자라 족은 시아파다. 인종과 종교 간의 차이 때문에 탈레반이 통치하던 기간 중에도 이들에게는 갈등이 많았다.

탈레반 군이 하자라 족을 멸절하기 위해 험준한 산세를 이룬 바미얀을 쳐들어 왔을 때도 이들은 생존을 위한 처절한 혈투를 치러야만 했다.
제바의 삼촌을 반디미르 축제가 열리는 공원에서 만났다. 그는 이른 나이에 파키스탄으로 넘어가 난민촌에서 일하며 영어를 배우고 유엔 기구에서 일하다 대학원까지 나온 아프간 형 지성인이었다. 카불 등 대도시에 나가 유엔기구나 외국 회사에 취직하면 적지 않은 수입을 올릴 수 있을 텐데 굳이 그는 고향으로 돌아와 문명과 문화가 전무한 마을 사람들을 일깨우는 개척자로 살고 있다.
부엌에서 손님으로 온 필자를 위해 당근을 썰고 자기네의 주식인 빵 ‘논’을 굽던 그녀를 카메라에 담았다. 대부분의 아프간 처녀들이 8살이 지나면 몸 전체를 부르카로 덮는 치렁치렁한 홀테 옷을 입는데 반해 14세인 그녀는 아직 부르카를 입고 있지 않았다. 아프간 처녀들은 정조관념으로, 종교적 이유로 부르카를 쓴다. 지방 사람들일수록 보수적이어서 부르카를 착용하는데 제바 네는 그리 근본주의적 이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화기애애한 가족들의 모습을 사진에 담고 나니 반디미르 공원이 더욱 친근하게 다가왔다.

10월에 눈이 내리기 시작해서 4월 말까지 깊은 눈에 잠기는 해발 4000미터 고지 반디미르가 그녀의 고향이다. 그런 그녀가 ‘원더풀 아프가니스탄’ 사진전의 손님으로 한국을 찾는다. 반디미르에서 차를 타고 카불까지 열네 시간, 생애 처음으로 비행기 트랩에 오를 그녀를 기다리는 내 가슴이 두근거린다. 카불에서 두바이를 거쳐 한국에 이르는 동안 그리고 그녀가 한국에 머무는 동안 겪게 될 문명의 반란이 자못 흥미를 더한다. 그리고 그녀가 생애 처음 겪게 될 혼란에 마음이 안쓰러워진다.

양국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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