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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7천명 숨진 전투 끝에 고지 되찾아…피로 물들어 `피의 능선'(철원군 원남면 백암산 정상)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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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7천명 숨진 전투 끝에 고지 되찾아…피로 물들어 `피의 능선' | |
6.25 63년, 정전 60년 (4·完)정전협상, 또 다른 전쟁의 시작 | |
국방부와 7사단에서 실시하는 철원군 원남면 백암산 능선 6·25전사자 유해발굴현장은 총과 탄환 등 전투장비와 병사들의 소지품이 발굴돼 무수한 목숨을 바친 격전지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철원=김효석기자 | |
6·25가 발발하고 1년, 전선은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1951년 7월10일 이미 막대한 피해를 입은 연합군과 북한군, 중공군 간의 정전협상이 시작됐다. 전쟁이 곧 끝날 것이라는 기대감, 분단을 고착화하는 휴전에 대한 반대, 피맺힌 전우의 한을 되갚아야 한다는 용사들의 분노 등 수많은 외침이 한반도에 소용돌이쳤다. 정전협상은 2년간의 또 다른 비극을 잉태했다. `휴전선 긋기' 시작되자 한치의 땅이라도 더 얻기 위한 참혹한 쟁탈전 벌어져 하루에도 수차례 주인 바뀌어 1953년 7월27일 정전 앞두고 두달간 10건 고지전 집중 발생 지금 우리가 밟고 있는 이 땅은 긴 전쟁의 끝을 눈앞에 두고 가족에 못돌아간 용사들 희생 연합군과 공산진영의 협상은 지지부진한 반면 전선은 오히려 가열됐다. 협상으로 `휴전선 긋기'가 시작되자 한 치의 땅이라도 더 얻기 위한 고지전이 시작됐다. 도내 곳곳에서 하루에도 수차례 고지의 주인이 바뀌고 작은 능선에 수만발의 포탄이 떨어지며 총검을 들고 백병전을 벌이는 참혹한 쟁탈전이 벌어졌다. 협상이 시작된 지 한 달 만인 1951년 8월18일 국군은 양구 북쪽 고지를 점령한 채 협상결렬시 남진을 준비 중이던 북한군에 공격을 감행했다. 열흘간 국군 1,000명이 전사하는 치열한 전투 끝에 능선을 점령했으나 진지를 재정비할 시간도 없이 반격해온 북한군에 다시 빼앗기고 말았다. 이에 미군2사단은 화력을 총동원해 능선에 어마어마한 포탄을 쏟아부었다. 3주간 국군과 미군, 북한군 1만7,000여명이 숨지는 전투 끝에 고지를 재점령하며 북한군은 지금의 양구군 해안면 펀치볼 북쪽으로 물러섰다. 전투 당시 능선이 아군과 적군의 피로 물들어 피의 능선(Bloody Ridge)으로 불리게 됐다. 미군과 프랑스군은 여세를 몰아 양구와 인제를 연결하는 고지를 공격했다. 유엔군 사상자 3,700여명이 발생한 1개월간의 전투 끝에 양구와 인제를 온전히 되찾을 수 있었다. 전투 중 심각한 부상을 입은 한 미군이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다(Heart Break)'라고 외치는 것을 들은 종군기자가 이를 보도해 단장(斷腸)의 능선(Heart Break Ridge)이라고 불렸다. 정전협상은 결국 1952년 10월 포로 교환문제에 대한 이견으로 결렬됐다. 중공군의 저격수들이 배치된 철원 북쪽의 저격능선과 철원평야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백마고지에선 또다시 혈전이 벌어져야만 했다. 1953년 7월 정전협정은 진척을 보였다. 정말 전쟁이 끝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중공군과 북한군은 7월13일 화천 백암산과 교암산 적근산 방면의 금성지구를 향해 최후의 총공세를 감행했다. 정전협정이 체결되기 불과 2주 전이었다. 마지막 공세를 통해 자신들이 전쟁에서 승리했다는 것을 보여주려 한 공격이었다. 잠시 주춤하던 우리 군은 백암산에서 재정비한 후 반격을 가해 금성지구를 되찾았다. 금성지구를 넘어 북진하려던 우리 군은 정전협정을 앞두고 유엔군에 의해 제지됐다. 7월27일 정전을 앞두고 6월과 7월 두달간 10건의 고지전이 집중적으로 발생하는 등 전쟁 초기를 연상케하는 참혹한 전투가 이어졌다. 이 가운데 9건의 고지전은 양구 철원 고성 등 도내에서 벌어졌다. 지금 우리가 밟고 있는 이 땅은 60년전 기나긴 전쟁의 끝을 눈앞에 두고 끝내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지 못한 용사들의 희생으로 굳게 다져진 땅이다. 최기영기자 answer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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