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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격 X파일 9] 아시아의 야생마 김주성 “골 넣을 수 있는 찰나를 잡아라”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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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격 X파일 9] 아시아의 야생마 김주성 “골 넣을 수 있는 찰나를 잡아라”

영원한 친구 주님 2014. 3. 30.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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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18 19:40

아시아의 야생마 김주성 ⓒKFA
골을 넣을 수 있는 시간은 90분이 아니다.

“사람들은 축구하면서 골을 넣을 수 있는 시간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득점은 아주 짧은 시간에 이뤄져요. 90분 동안 골을 넣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에요. 기회는 0.01초에 불과하죠. 스포츠는 순간 판단이 중요해요. 야구도 스윙의 순간은 매우 짧죠. 하지만 야구는 준비할 시간이 많아요. 노리는 공을 치기 위해서 기다릴 수도 있고, 한 번 타석에 들어설 때마다 적어도 세 번의 스트라이크 기회가 오죠. 축구는 변하는 순간마다 어떻게 대응하면서 준비하는지가 중요합니다. 축구 경기에서는 똑같은 장면이 두 번 다시 오지 않습니다.”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한국을 대표했던 ‘야생마’ 김주성의 골 비결이다. 김주성은 그의 전성기라고 할만한 1989, 1990, 1991년도에 세계축구역사통계연맹(IFFHS)이 선정하는 AFC 올해의 선수를 수상했다. 이 상은 1994년부터 AFC가 직접 선정하고 있으며, 그 이후에는 아직 우리나라 수상자가 없을 정도로 한국인으로서 수상은 유일하다.

김주성은 K리그에서도 한 팀(대우로얄즈-부산대우)에서 뛰며 통산 255경기에 출전해 35골 17어시스트를 기록했고, 독일 분데스리가에서도 보쿰에서 두 시즌을 뛰었으며 36경기 5골 7어시스트를 기록했다. 양국의 프로리그 291경기에 뛰면서 40득점 24도움의 기록을 세웠다.

국가대표팀에서도 A매치 76경기에 출전해 13골을 넣었다. A매치가 아닌 경기까지 모두 합하면 19골을 넣었다. 그는 1987년에 프로축구 신인상, 1988년에 아시안컵 MVP, 1997년에 프로축구 MVP를 수상하며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1987년에는 포워드로 K리그 베스트11에 뽑혔고, 1991년에는 미드필더로, 1996-1997년과 1999년에는 수비수로 K리그 베스트11에 선정되는 등 다양한 포지션에서 활약했다. 그가 전 경기를 뛰었던 1987년(대우로얄즈), 1991년(대우로얄즈), 1997년(부산대우)에는 소속팀을 우승시키는데 크게 기여했다.

대우 시절의 김주성 ⓒ월간축구
연습도 실전이라 생각, 최고의 플레이 펼쳐라

"골을 넣고자 한다면 기회를 잘 포착해야 하고, 그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자신감이 필요합니다. 0.01초의 순간에 자신감을 가지고 자신만의 슈팅을 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연습과 실전을 구분해서 플레이하는 습관부터 고쳐야 해요. 훈련 때마다 실전이라고 생각하고 실전과 똑같이 연습하는 것이 좋아요. 늘 최고의 플레이를 펼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것을 반복해야 합니다. 훈련과 공식 경기를 구분하는 사람이 많은데, 정말 골을 넣고 싶다면 연습 때도 똑같이 해둬야 경기에서 그 플레이가 나옵니다."

"이런 말을 할 때가 있죠. ‘골을 넣을 때는 항상 그 선수가 있었어’, ‘골을 넣는 위치에 항상 그 선수가 가 있었어’ ‘득점을 할 때는 항상 그 선수야’ 골운이 좋은 선수에게 기회가 쉽게 주어지는 것은 아니에요. 득점을 하는 것은 우연히 이뤄지는 것이 아닙니다. 천부적인 골케터는 정말 특별한 케이스죠. 대부분은 반복적인 연습을 통해서 몸에 동물적인 감각처럼 능력이 길러집니다."

1985년 1월 1일 부산. 국가대표팀과 올림픽대표팀의 평가전이 열렸다. 국가대표팀은 1986 멕시코 월드컵 예선을 위해, 올림픽대표팀은 1988 서울 올림픽을 대비하여 소집됐다. 국가대표팀 감독은 김정남, 올림픽대표팀 감독은 박종환이었다. 김주성은 올림픽대표팀에서 뛰었는데 1-1 동점 상황에서 결승골을 멋지게 작렬시켰다.

“태극마크를 달고 국가대표팀을 상대로 골을 넣었을 때 정말 짜릿했죠. 신인이었는데 그 경기 이후로 축구팬에게 많이 알려졌어요. 국가대표팀은 모든 선수의 꿈이었는데, 존재를 알리고 가치를 인정받아서 무명에서 발돋움할 수 있었습니다. 그 해 5월에 국가대표팀에 선발됐죠.”
야생마를 연상케하는 질주로 유명했던 김주성. 89년 월드컵 예선 북한전 ⓒKFA
유소년 기본기 완벽해야

1985년 7월 21일 잠실에서 열린 월드컵 2차 예선은 김주성의 A매치 데뷔전이었다. 김주성은 이 경기에서 데뷔골을 터트렸다. A매치 데뷔전에서 곧바로 골을 성공시킨 공격수는 황선홍, 하석주, 김도훈 등이 있다.

“당시는 월드컵의 가치를 잘 몰랐을 때였어요. 올림픽을 유치하고 스포츠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서 월드컵 정보도 생기기 시작했죠.”

변병주의 선취골에 이은 김주성의 추가골로 인도네시아를 2-0으로 제압한 한국은 원정에서도 4-1로 이기고 최종 예선에 진출했다. 그리고 마침내 최종 예선에서 일본을 꺾고 1954 스위스 월드컵 이후 32년 만에 세계 축구 무대에 등장하였다.

“킬러가 되기 위해 짧은 순간의 판단 능력이 필요하다고 했는데, 그 몇 가지 요소에 대해 말하겠습니다. 첫째는 위치 선정이고, 둘째는 판단 능력입니다. 공이 오는 방향과 갈 방향을 잘 고려해야 하고, 공의 길목을 장악해야 하죠. 셋째는 자신감인데 그래야 침착하게 자기 스윙을 할 수 있습니다. 넷째는 밸런스 유지입니다. 몸의 균형을 잘 잡아야 슈팅의 템포를 조절할 수 있기 때문이죠."

" 이렇게 설명한다고 해서 경기 중에 이런 것을 모두 생각해야 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이런 것이 반복적인 훈련을 통해 자기 신체에 잠재 능력으로 자리 잡도록 해야 해요. 경기 중에는 반사적으로 동작이 이뤄집니다. 슈팅 동작이 감각적으로 나오는 것이지 의도적인 것은 아니에요."

"볼 감각이나 1:1 대처능력 같은 경기 감각이 뒷받침돼야 득점 능력을 소유할 수 있어요. 볼 감각이나 경기 감각을 유소년 때부터 키워주면 훨씬 유리하겠죠. 그래서 유소년의 기본기가 중요한 겁니다. 유소년 때 기본기가 완벽해야 성인돼서 질을 높일 수 있습니다.”

사진에서 보듯 그는 오른발잡이이면서도 왼발 슈팅을 많이 사용했다.

“축구 인생에서도 똑같은 기회는 두 번 다시 오지 않습니다. 기본기를 잘 다듬어야 할 시기에 있는 유소년, 청소년 선수는 나중에 성인이 돼서 후회하지 말고 지금 기회를 잘 활용하세요.”

(김주성 : 1966년 출생. 1985-1996년 국가대표 선수. A매치 76경기 13득점. 프로리그 291경기 40득점 24도움= 한국 255경기 35골17도움+ 독일 36경기 5골 7도움. 현 KFA 국제부장.)


글=손성삼 과장 (KFA 기획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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