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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너의 영원한 친구야
어느 선교사가 선물한 감동 본문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ㅌ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이사야 55:8~9
우리는 매년 겨울이면 태국에 가서 전지훈련과 선교 활동을 했습니다. 국내에서 경기가 없는 비시즌 기간인 겨울이야말로 우리가 선교 활동을 할 수 있는 기간입니다. 물론 재정적 어려움이 늘 있었지만, 그럼에도 주님은 태국으로 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나와 태국은 참 인연이 깊습니다. 1972년 내가 청소년 대표팀에 합류해 제일 먼저 출전한 나라가 태국입니다. 아시안컵대회라든가 킹스컵 등 여러 국제대회를 태국에서 많이 열었기 때문에, 덕분에 태국에 많이 갔습니다. 1975년 킹스컵대회에서 국가대표로 출전하여 여섯 골이나 넣고 우승한 적도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1990년에 윌락 씨를 만나게 해 주셨습니다. 우리 축구팀이 태국의 촌부리팀과 게임을 한 적이 있는데, 이때 윌락씨가 우리 팀 선수들이 볼도 잘 차고, 경기 매너도 좋다면서 참 마음에 들어 했습니다. 그 역시 축구선수 출신으로 축구를 정말 좋아했습니다. 당시 재생 타이어 공장을 운영하면서 전국의 축구를 좋아하는 초등학교 어린이들을 매년 20명씩 선발하여 그 아이들이 중. 고등학교 에 갈 때까지 공부를 시켰습니다. 120여 명이 합숙소에서 함께 지내며 숙식하고 있었습니다.
윌락 씨는 우리에게 코치 두 명을 요청했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서로 교제하다 보니 그도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는 예수를 믿은 후 그동안 집안에 모셔 둔 불상을 모두 불살라 버렸습니다. 매년 우리 팀이 언제 태국에 가겠다고 하면 윌락씨는 태국 국가대표팀, 프로팀과 게임도 잡아 주고, 태국 교회를 순회하는 축구 선교 스케줄도 잡아 주었습니다. 이렇게 그와 형제처럼 지내 온 지도 벌써 20년이 되어 갑니다.
2009년 1월에도 태국에 도착해서 수리타니 남쪽 지역에 내려가 있는데, 태국축구협회의 윌락 씨한테 전화가 왔습니다. "퀸스컵 대회때문에 야단이 났습니다. 대회가 3주밖에 남지 않았는데, 일본팀이 갑자기 대회 참가를 취소했습니다. 혹시 할렐루야 축구팀에서 대신 참가해 줄 수 있겠습니까?"
퀸스컵대회는 올해로 34회째나 맞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국제축구대회입니다. 물론 우리가 이미 태국에 와 있고 경기에 참가하는 것은 어렵지 않겠지만, 그래도 국제대회니만큼 절차를 밟아야 했습니다.
"먼저 대한축구협회에 공문을 보내 국제대회 요청을 정식으로 해주십시오. 그래야 우리 팀이 국제대회에 나갈 수 있습니다. 또 한 가지, 우리는 한 달 동안 체류할 수 있는 티켓을 끊었습니다. 경기에 참여하면 돌아가는 비행기 티켓은 태국축구협회에서 책임져 주셔야 합니다. 태국축구협회에서 바로 조치를 취해 우리 팀은 퀸스컵대회에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일본 돗토리팀 대신 대한민국 할렐루야 축구단이 참가한다는 소식을 듣고는 태국의 언론과 축구 팬들이 반대하는 여론도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솔직히 나 역시 국제대회다 보니 부담도 되고 걱정도 되긴 했지만 이왕 출전하는 이상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주님의 뜻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우리 팀을 통해 무언가를 하시고자 우리를 참가시키신 것이다. 우리는 오직 주님만을 바라보며 퀸스컵대회를 위해 기도하며 열심히 체력과 전술을 극대화했습니다. 몇 년 전 태국 치앙마이에서 선교 활동을 하던 중 정글에 들어가서 어린이들과 축구를 하며 먹고 잔 일이 있습니다. 그때 아주 좋았던 기억이 있어서 2009년에도 정글에서 어린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선교사님께 부탁을 해 놓은 상태였습니다. 선교사님이 잡아 놓은 곳은 옴꼬이에 있는 예수원이었습니다. 많은 미얀마 사람들이 태국으로 넘어왔는데, 태국 정부가 이들을 태국 시민으로 인정해 주지 않아 이곳에서 모여 살고 있다고 했습니다. 차도 들어갈 수없는 그 지역에 박문수 선교사 부부가 예수원을 짓고 18년 동안 100여명의 어린이들을 먹이고 재우고 입히며 신앙 훈련을 시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킨스컵대회 출전을 결정하고 나니 갈등이 생겼습니다. 원래는 치앙마이 옴꼬이 예수원에서 바로 한국으로 돌아갈 예정이었기 때문에, 치앙마이 일정을 포기해야만 시합을 준비할 수 있었습니다. 국제 경기에 나가려면 훈련도 해야 하고, 선수들도 쉬어야 하는데 치앙마이에 가면 그럴 겨를이 없었습니다. 인간적인 눈으로 보면 한 달 정도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시합에 나간 우리 팀이 시합 준비만 착실히 해 온 팀보다 더 못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습니다. 옴꼬이 스케쥴을 취소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그만두었습니다. 선교가 우리의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치앙마이 스케줄을 포기했다면 큰일날 뻔했습니다. 우리 할렐루야 축구단이 그곳에서 얼마나 많은 감동을 받았는지 모릅니다. 우선은 아이들의 신앙 때문입니다. 중.고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새벽에 일어나서 기도하고 찬양하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모습을 보면서 얼마나 많은 도전과 힘을 얻었는지 모릅니다. 이 아이들의 얼굴은 달랐습니다. 얼굴에 꿈이 있고, 희망이 있었습니다. 또 해병대 출신이라는 그곳 선교사님의 간증이 우리의 안이한 신앙생활에 큰 충격으로 다가왔고, 대부분의 선수들이 다시 헌신을 다짐하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선교하러 갔다가 오히려 우리가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1박2일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아이들과 함께 축구하고 예배드리고 기도하면서 우리는 정말 주님이 내려 주시는 은혜에 흠뻑 젖었습니다. 만약 우리가 치앙마이 스케줄을 포기했다면 몸도 좀 쉬고 훈련에 집중하면서 최상의 컨디션을 만들었을지 모르지만, 그 대신 주님이 주시는 특별한 은혜와 기쁨을 맛보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우리 팀 버스가 옴꼬이 예수원을 떠나려 할 때에 박선교사님이 누런 봉투를 내밀고는 울먹이며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여러분때문에 많은 힘을 얻었습니다. 어제 목사님이 할렐루야 축구단이 내년이면 30년이 되어 가는데 아직 전용구장도 없고 합숙소도 없다는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대한민국 축구 1호 프로축구단이 맨땅에서 운동한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어젯밤 기도할 때 하나님이 지금 가지고 있는 모든 돈을 할렐루야 축구단에 주라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이 돈은 앞으로 할렐루야 축구단 전용구장을 사는 데 주춧돌이 될 것입니다.
나는 망치로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습니다. 지금까지 선교하러 많이 다녔지만, 우리가 헌금을 하면 했지 선교사님한테 헌금을 받아 보기는 처음이었습니다. 게다가 그 헌금은 교회를 짓기 위해 오랫동안 모은 금쪽같은 돈이었습니다. 그 사랑 때문에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습니다. 우리는 차 안에서 함께 눈물을 흘리며 기도했습니다. "이 돈이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키는 돈이 되게 해 주시옵소서." 차가 출발하고 꼬깃꼬깃 싼 수건을 풀어 보니 1달러짜리가 수북했습니다. 그야말로 있는 돈 없는 돈 다 긁어모아서 주신 것 같았습니다. 헌금은 1만 달러나 되었습니다. 이 헌금을 주며 선교사님이 하신 말씀이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습니다.
"하나님의 전용구장의 기초로 사용해 주세요."
30년 동안이나 기도해 왔는데 이제야 하나님이 주실 모양이구나. 이렇게 시드머니를 주셨으니...,
그날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기쁜 마음으로 퀸스컵대회가 열리는 촌부리로 가면서 내 생각과 주님의 생각은 너무나 큰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