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나는 너의 영원한 친구야

30년을 하루같이-야곱이 라헬을 위하여 칠 년 동안 라반을 섬겼으나 그를 사랑하는 까닭에 칠 년을 며칠같이 여겼더라-창세기 29:20 본문

하나님 나라의 선교 대사들

30년을 하루같이-야곱이 라헬을 위하여 칠 년 동안 라반을 섬겼으나 그를 사랑하는 까닭에 칠 년을 며칠같이 여겼더라-창세기 29:20

영원한 친구 주님 2013. 11. 25. 18:39
728x90
반응형

1973년에 은혜를 체험하고 즐겨 부른 찬양이 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 내가 산 것 아니요

오직 내 안에 예수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자기 몸 버리신 예수 위해 산 것이라

 

    선수 시절, 운동장에서 힘들고 지칠 때마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 에 곡을 붙인 이 찬송을 부르고 이 말씀을 붙잡았습니다. "내가 뛰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뛰신다. 주님이 내 안에서 뛰신다" 고 생각하면 지쳤다가도 힘이 났습니다. 나는 만물의 찌끼와 같고, 타다 남은 부지깽이만도 못 하고, 질그릇같이 연약한 존재지만, 보배이신 주님이 내 안에 계시므로 내가 살 수 있습니다. 주님이 내 안에 계신 것은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내게 있지 않다는 것을 알려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주님이 내 안에 계시기 때문에 나는 그라운드를 종횡무진 누비고, 오대양 육대주를 누비는 사람이 됐습니다. 바알 선지자들과 850대 1로 싸운 하나님의 선지자 엘리야는 로뎀나무 아래서 차라리 죽기를 바랐습니다. 그 엘리야의 심정을 나는 조금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할렐루야 축구단을 이끄는 일은 강을 건너면 또 강, 산을 넘으면 또 산과 같았습니다. 갈 길은 너무 멀고 험했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나는 어려서부터 악착같고 승부욕이 강한 성격이었는데, 축구단을 이끌면서부터는 기도만 하면, 찬송만 하면 하염없이 눈물만 나왔습니다. 선수들한테 승리수당이나 게임수당은 커녕 월급 한 푼 줄 수 없는 게 가장 마음이 아팠습니다. 선수들을 생각하면 늘 마음이 아팠습니다. 아비의 마음이 그렇구나. 내가 눈물 흘리면 주님도 마찬가지로 안타까우시겠구나.

 

   그런데 내가 울며 기도할 때마다 내 안에 계신 주님이 나를 어루만져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내 얼굴에 흐르는 눈물을 씻어 주셨습니다. 설마 하나님이 굶어죽게야 하시겠는가 하면서도 수중에 돈 한 푼 없을 때는 방법이 없었습니다. 먹고 자는 것을 공짜로 해결해 주는 기도원을 전전하기도 했습니다. 신앙인으로서 사람들한테 돈을 꾸러 다닐 수도 없어 새벽기도를 다녀오면 전화기 옆을 떠날 줄 몰랐습니다. 그때는 지금처럼 휴대폰이 있던 시절이 아니었으니까요, 그러다가 어느 집사님한테서 "후원금 조금 보냈습니다"하고 전화 가오면 뛸 듯이 기뻐서 눈물이 났습니다. 하지만 전화벨이 울리지 않을 때가 더 많았습니다.

 

   어제도 굶었는데, 선수들이 다 떠나면 어쩌지. 끄

   이렇게 염려하고 걱정할 때가 많았습니다. 선수들과 나한테는 참 힘든 시간이었지만, 우리 팀은 하나님을

끝까지 신뢰하고 믿었습니다. " 하나님, 우리들을 굶게 하시는 데도 뜻이 있으시겠지요?"

   하나님을 신뢰하기로 결정했을 때, 우리 중에 아무도 굶어죽지 않았고, 선수 중에 아무도 우리 팀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마치 사탄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너 그래도 믿겠느냐?"

   나는 욥을 생각하면서 주님만 바라보았습니다. 엘리야가 로뎀나무 밑에서 천사가 마련해 준 물과 음식을 먹고 40주야를 달음질했다고 했는데, 나도 주님이 오셔서 내 손을 잡아 주시면 모든 근심을 털어내고 주님 손잡고 신이 나서 달음질했습니다. 우리 팀은 정말 홀대를 많이 받았습니다. 사람들이 우리 팀의 상황도 잘 알지 못하면서 "오합지졸 축구단이다," "거지같은 팀이다", "축구 못한다"는 말을 할 때면 정말 속상했습니다. 우리 팀을 무시하는 사람들을 원망하고 미워할 수도 있었지만, 그때마다 주님은 내게 이런 마음을 주셨습니다.

 

   그래, 우리 주님도 세상에서 길바닥에 짓밟힌 장미꽃처럼 밟힐 때가 있었고 우리 팀처럼 죽은 개 취급을 당하셨지.' 주님은 그렇게 우리를 위로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이 사명을 버리고 도망갈 생각을 못했습니다. 주님이 나의 보배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너무너무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나는 아내와 8년을 교제하다 결혼했기에 사랑이 뭔지 잘 압니다. 우리는 8년 동안 150통의 편지를 주고받을 만큼 애틋했습니다. 손 한번 잡아 보면 참 좋겠다 싶은데도 끝내 제대로 못 잡아 보고 결혼했습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뭔가 주고 싶어서 외국에 경기 나갔다가 돌아올 때면 무슨 선물을 사다 줄까 고민했습니다. 이처럼 사랑을 해 봤기 때문에, 야곱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야곱이 라헬을 위하여 칠 년 동안 라반을 섬겼으나 그를 사랑하는 까닭에 칠 년을 며칠같이 여겼더라"

    (창세기 29:20)

 

   매일 똑같은 일이라 지겹기도 했을 테고 몸도 고달팠겠지만, 야곱은 라헬을 사랑하기 때문에 힘든 줄도 몰랐습니다. 사랑은 참으로 말할 수 없는 신비입니다. 그런데 내가 주님의 사랑에 빠져 주님과 함께 30년을 지내고 보니, 30년이 정말 3일처럼 여겨집니다.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님을 주시기까지 나 같은 사람을 사랑해 주셨습니다. 시골 촌놈에 불과한 나를 대표선수가 되게 하시고, 운동장에서 주님께 기도드리는 것으로 복음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명예와 인기도 주셨습니다. 게다가 주님은 나를 종에서 친구로, 자녀로 그리고 나중에는 신부로 불러 주셨습니다. 주님의 사랑이 너무 감사하고 고마우니까, 축구단을 이끌어 오면서 고생한 것이 하나도 고생으로 여겨지지 않았습니다. 친구들이 가끔 묻습니다. 스폰서가 있는 것도 아니고, 팀을 어떻게 이끌고 있냐? 잘 지내냐? 선수들은 월급은 주냐?"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늘 감사합니다. 천 원 후원자들께도 너무 감사하고, 만 원 후원자들께도 감사합니다. 그 이상을 주시는 교회 성도들께도 감사합니다. 물질 후원만 아니라 기도해 주시고 조금이라도 우리 이해해 주시는 분들께 언제나 감사합니다.

 

   주님이 늘 함께하시며 늘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주님이 나와 선수들을 떠나지 않으시고 늘 함께 하신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경기에 나갈 때 우리 팀 벤치에는 주님 자리를 마련해 드립니다.

   "주님, 이 자리에 앉으세요"

   선수들에게 코치하기 전에 먼저 주님께 기도합니다. "주님, 오늘도 주님이 가르쳐 주시는 대로 코치하고 지도하기 원합니다." 그러면 늘 응답해 주셨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두 낱말은 초지일관과 일편단심입니다. 우리 축구단 창단 감사 기념예배 때 어느 권사님이 이런 기도를 하셨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이 순수한 사랑이 주님 앞에 서는 그날까지 변질되지 않게 해 주시옵소서. 사명을 다하는 그날까지 식지 않게 해주시옵소서."

 

   나는 그 기도를 주님의  듣고 부족하지만 지금까지 주님을 사랑하는 순수한 마음과 복음 전파와 영혼 구원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우리를 부르는 곳이라면 천하보다 귀한 한 영혼을 위해 어디든지 달려갔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으니까, 오늘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열과 성의를 다해 선수들을 가르치고 지도했습니다. 그렇게 30년이 수일처럼 흘렀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어떻게 이 길을 걸어왔는가 싶습니다. 언제나처럼 이 순간도 주님을 찬양합니다. 아직도 앞이 캄캄하고 너무 힘들고 갈 길이 멀게만 느껴지지만 내가 가야 할 길이기에 묵묵히 초지일관, 일편단심 주님 한 분으로 만족하며 이 생명 다하는 날까지 달려갈 것입니다.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사도행전 20장 24절

 

   사도 바울은 자신이 예루살렘으로 들어가면 결박과 죽음이 기다리고 있는 줄 알았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예루살렘에 들어가면 십자가에 달리실 줄 아셨습니다. 주님이나 사도 바울이나 다 알면서도 십자가의 길을 걸아간 것처럼 나 또한 부족하지만 주님만 믿고 그 길을 가기 원합니다.

반응형